[맹정주의 좌충우돌]

[오피니언타임스=맹정주/ 블로그] 아이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린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초등하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언론에서 ‘다섯 살도 매일 3시간 공부...뛰놀 틈이 없어요’라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교육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영어 교사가 없는 유치원은 엄마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논술, 수학, 영어, 악기, 운동 등의 과외가 일반화되어 있다. “옆집 아이가 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 아이도 보낸다”는 게 부모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한창 뛰어 놀아야할 아이들을 이렇게 혹사시켜도 되는 것일까?

사교육은 아이가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되면서 아이와 부모 모두 고난의 길로 몰아넣고 있다. 학생들의 고생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허리가 휠 지경이다.

심지어 사교육은 저출산의 중대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반화돼 이제는 언론의 주목조차 끌기 힘든 실정이다.

주입식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 ©픽사베이

2008년 강남구의 소중한 체험

2008년 서울 강남구는 교육구청과 협력하여 관내 5개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나는 겨울방학학교’를 열었다. 방학에도 아이들이 평소처럼 등교하여 오후 3시까지 선생님과 숙제도 같이 하고, 춤과 노래, 줄넘기, 요가는 물론 스케이트와 눈썰매 타기, 미술관과 박물관 견학 등의 여가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교마다 프로그램은 조금씩 달랐다. 학교와 학부모가 자율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하기까지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등 여러분의 노력이 뒤따랐지만, 내 생각에는 자율적으로 ‘시장경제에 맡겼던 게’ 주효했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당초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소문이 빨라서 다른 학교 학부모들로부터 “왜 우리 학교는 그 프로그램이 없느냐?”는 전화가 많았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5개 학교에는 다음 학기 프로그램에 미리 예약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2009년 2월 한 신문사 기자가 이 프로그램을 취재한 뒤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읽었고, 교육개혁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학교가 아이들에게 즐거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 날 가 본 초등학교 세 곳에서 ‘학교 오는 게 신난다’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넘치도록 행복감을 선사받고 돌아왔다”고 썼다. (2009.2.2. 조선일보 참고)

학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이 프로그램은 ‘온종일학교’로 발전했다.
방과 후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009년 5월 학부모들과의 간담회 때에는 “만시지탄이다. 더 서둘렀으면 좋았을 것”이란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학부모들은 한 달에 적게는 40만원, 많게는 100만원 들어가던 사교육비가 20만원으로 줄었다고 좋아했다.(당시 이 프로그램의 학부모 부담이 20만원이었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4~6학년까지 프로그램을 확대해 달라고 했다. 특히 맞벌이 학부모들의 요청이 거셌는데 이 프로그램 덕택에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잘 갔는지, 길은 잘 건넜는지, 피아노학원엔 잘 갔는지 등등 모든 걱정을 덜게 됐다고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

강남구는 온종일 학교를 통해 사교육 못지않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 학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픽사베이

공교육에도 시장원리 도입해야

2013년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등학교 방과 후 교육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밤 8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서 돌봐주겠다고 발표했다. 강남구의 ‘온종일학교’와 유사했다. 나는 무릎을 쳤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초등학교에서 교육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이 공약은 유명무실해졌다. 학교에서 그냥 아이들을 붙잡아두는 프로그램에 그쳐 버린 탓이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종이접기와 같은 간단한 놀이를 시키면서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고학년의 경우는 프로그램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해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한때 학부모들로부터 각광을 받던 프로그램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 학교의 교육서비스가 성공하려면, 그리하여 초등학교 사교육비를 줄이고자 한다면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의 방과후 프로그램에 없는 것들 말이다.

첫째 학교 밖 사교육의 장점을 학교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일 아닌가? 현재의 방과후학교가 ‘애물단지’에서 탈피해 제 자리를 잡으려면 프로그램 수준을 사교육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려야 한다. 예체능의 경우도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몰라도(예컨대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바이올린의 장영주 씨처럼) 학교 안으로 흡수해야한다. 그리고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학부모가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한다.

둘째,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해야 한다. 현재는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는 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외국어는 조기에 배워야 효과가 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특히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운 아이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3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게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초등교육에 토론식 수업을 도입해야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아직도 주입식 교육을 시키는 나라는 한국, 북한, 일본 뿐이라고 한다. 이제는 우리도 학급당 학생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토론식 교육이 가능해졌다. 사실 주입식, 또는 암기식 교육은 이미 용도폐기된 것 아닌가? 필요한 건 모두 스마트폰에 들어있는데 구태여 암기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토론식 수업은 아이들의 협동심, 탐구력, 창의력을 계발한다.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고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세계인구의 약 0.2%에 불과한 유태민족이 매년 노벨상의 20% 이상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암기식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토론식 교육을 한다. 유태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학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는 오늘 선생님께 질문 몇개 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아이와 부모들을 사교육에서 해방시키고, 영어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가르치고, 토론식 교육을 도입하여 초등교육을 혁신하는 첫 걸음을 내 딛도록 하자.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맹정주

  전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

  전 국무총리실 경제행정조정관 

  전 강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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