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가작]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내가 살던 동네에는 떠돌이 개 무리가 있었다. 아직 도로 정비가 되기 전이라 집들은 삐뚤빼뚤했고 골목 모퉁이마다 음식 쓰레기가 나뒹굴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전봇대에 색색의 현수막이 붙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합장을 뽑는 선거를 떠들썩 하게 치르더니 집들이 하나 둘 비어갔다. 사람은 떠났지만 집과 짐과 개는 남았다. 그 개들이 모여 무리가 되었고 어느새 스무 마리쯤 되는 큰 집단이 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개들의 무리가 궁금했다. 하얀 털복숭이도 있고, 집안에서 곱게 키우던 푸들도 있고, 꼬리만 분홍색으로 염색한 시츄도 있었다. 누가 봐도 잡종인 녀석들도 있었다. 이 개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음식 쓰레기를 파헤쳤고, 누군가 집에서 곰탕을 끓인 날이면, 커다란 사골뼈를 입에 물고 자기들만의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개들은 사람을 위협하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를 드러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빈집 언저리를 자기들 구역으로 인식하는 듯 했다. 특히 동네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몰래 버리던 골목길을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듯 했다. 누군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다가가면 얌전히 놔두다가,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밀면 날카롭게 이를 내미는 식이었다. 이 무리의 리더는 얼룩덜룩 반점이 있고 덩치가 중간쯤 되고 성격이 드세던 잡종 강아지였다. 바둑이는 바로 음식물 쓰레기가 쌓이는 골목길 옆 2층집에서 키우던 개였다. 원래 이름은 모르지만 바둑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었다. 무리의 암컷들을 이끌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허리를 들썩이던 호색한이기도 했다. 큰 탈 없이 큰 무리를 잘 이끄는 듯 했다. 암컷들도 바둑이 앞에선 배를 내밀며 수시로 애교를 떨었고, 여남은 수컷들도 큰 다툼 없이 바둑이의 말을 잘 따랐다.

©픽사베이

정원 대보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빈 집에는 빨간 페인트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고, 짧은 머리의 젊은이들이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 무리에 크게 관여치 않았지만 되려 사람들은 무척 경계했다.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욕을 뱉었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사람들은 서둘러 집을 떠났고, 개 무리는 어느새 서른 마리가 넘어갔다. 몇 마리 암컷이 배가 불러가기 시작할 때쯤 동네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등장했다.

포크레인은 무서웠다. 육중한 팔을 휘둘러 집 지붕부터 시루떡처럼 눌렀다. 허술한 슬레이트 지붕들은 폭탄을 맞은 듯 구멍이 펑펑 났고 뽀얀 먼지가 쉴새 없이 날렸다.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집에 남아 있었다. 폐지를 줍던 할머니도 그 중 하나였다. 넓은 마당에는 항상 젖은 폐지가 쌓여있어 축축한 냄새가 나던 집이었다. 짧은 머리 젊은이들의 욕설은 점점 거칠어졌다. 포클레인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벽까지도 부술 듯이 달려 들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요지 부동이었다. 은신하던 집들이 점점 부서져가자 바둑이네 무리는 넓은 마당이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잘려나간 느티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어느 날 빨간 완장을 찬 조합장이 선두에 서고 짧은 머리 젊은이 한 무리가 몽둥이를 들고 뒤에 서 있었다. 목적지는 허허벌판에 달랑 한 채 남아 있는 폐지 할머니네 집 앞이었다. 눈치 빠른 동네 어른들이 슬금슬금 구경 삼아 모여들었다. 폐지 할머니는 집안 장롱에 몸을 묶었다. 짧은 머리 젊은이들은 장롱째 할머니를 들어 날랐다. 그때였다. 바둑이를 비롯한 개 무리들이 폐지더미 속에서 뛰쳐 나오더니 젊은이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무서운 공격력이었다. 크게 짖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개들은 그저 물어뜯기만 했다.

동네 사람들이 손 쓸 틈도 없이 몇몇이 피를 보기 시작했다. 뒷짐 지며 구경하던 조합장이 구경하던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뭣들 허냐고. 사람들 구해야 쓰겠다고. 사람들 손에 미리 준비해둔 몽둥이를 쥐어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개들을 떼어내기 위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폐지더미 뒤켠에서 숨죽이던 배부른 암컷들도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암컷 들에게도 몽둥이질이 날아갔다. 장정의 구두 뒤축을 물고 늘어지던 바둑이가 갑자기 단말마로 크게 짖었다. 늑대 울음 같은 소리였다. 사람들이 낯선 소리에 몽둥이질을 멈춘 사이 바둑이는 자기 무리를 이끌고 무너진 담벽 틈새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놀라 어리둥절 하는 사이 바둑이 무리는 뒷산 너머로 사라졌다.

얼마 후 폐지 할머니네 집도 사라졌고, 금세 번듯한 5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다. 아파트 단지네 사람들의 옷차림은 번듯했고, 경비원들은 우리가 새 놀이터에서 못 놀게 쫓아내곤 했다. 이후로 바둑이네 무리는 전혀 동네에서 보지 못했다. 뒷산 약수터에서 중금속이 나왔다는 기사 이후로는 뒷산에 갈 일도 없어졌다. 그렇게 바둑이네 무리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얼마 전 설 명절에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어린 기억에 그렇게 높고 번듯하던 아파트가 이십 몇 년이 지났다고 흉물처럼 변해있었다. 재건축 이슈가 있어 일부러 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쨍쨍하던 경비원 아저씨도 이미 늙스구레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잡초가 자라는 놀이터에는 개 몇 마리가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아이에게 주려고 손에 쥐고 있던 과자 몇 개를 던져 주었다. 낼름 받아 먹더니 더 달라는 눈치다. 빈 손을 내밀며 더는 줄 것이 없다고 표시를 했다. 개는 미련 없이 뒤돌아 서너마리 되는 자기 무리를 이끌고 가버렸다. 떠나버린 개에게 바둑 무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왠지 몽둥이질에 쫓겨 나던 바둑이의 뒷모습이 스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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