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얼마 전 북미 간에 세기의 협상이 진행됐다. 우리는 물론, 향후 동북아의 미래를 좌우할 이 협상의 진행과 결과의 추이에, 일본과 러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새삼 협상이라는 말이 언론을 중심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중국 역사에 기록된 세기의 협상을 다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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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 시대(BC 770~BC 403)에서 전국시대(BC 403~BC 221)로 넘어가는 역사적 모멘텀은 당시 중국 북쪽의 실세로 군림하고 있던 진(晉)의 분열이다. 즉 범(范), 중행(中行), 지(知), 조(趙), 위(魏), 한(韓) 등, 여섯 귀족이 발호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면서 부터이다. 이 여섯 귀족은 진후(晉侯)를 정치적으로 배제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세력을 다투어,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 등 두 가(家)가 먼저 다른 네 가(家)에 의해 멸망하고, 그 영지는 분할되었다.

이 시기 여섯 귀족 중 하나였던 지백(智伯)은 그 세력이 가장 막강하여 나머지 귀족들을 위협하여 그들의 영토를 빼앗기 시작한다. 그가 다른 육경(六卿) 중 한 사람인 위선자(魏宣子)에게 영토를 내놓으라고 하였을 때이다. 위선자는 이유 없이 땅을 달라는 지백에게 대노하여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 하였다. 이때 위선자의 신하인 임장(任章)이 이렇게 조언한다.

‘지백이 이유 없이 남의 땅을 요구하니 이웃 나라들이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며, 그가 계속하여 욕심을 부리니 천하가 반드시 그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군주께서 땅을 내주시면 지백은 반드시 교만하여 적을 가벼이 여길 것이고, 그를 겁내는 이웃 나라들은 반드시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연합군으로 하여금, 적을 가벼이 여기는 나라와 맞선다면 지백의 수명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얻고자 한다면 먼저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姑與之)고 하였습니다. 군주께서는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주어서 그를 교만하게 만드십시요. 군주께서는 온 천하의 나라들과 동맹하여 지백을 타도할 계획을 세우지 않고 어찌하여 홀로 그의 공격 목표가 되려 하십니까.’

위선자는 임장의 말에 따라 지백에게 1만 호(戶)의 영토를 내주었다. 이에 고무된 지백은 다시 조양자(趙襄子)에게도 땅을 요구한다. 그러자 조양자는 위(魏)와 한(韓)과 연합하여 지백을 공격하였다. 그동안 암암리에 조(趙), 위(魏), 한(韓) 연합군은 방심한 지백을 공격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백은 타도되고 그가 얻었던 땅은 다시 이 들 3국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렇게 진(晉)은 한(韓), 위(魏), 조(趙) 등 세 나라로 분열하게 되고 이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단초가 된다.

후일의 도모를 위하여 우선 1만 호의 영토를 내어 주고, 결국은 승리와 함께 더 많은 영토를 되찾은 이 고사(故事)는 ‘한비자’의 ‘설림(說林)’ 상편에 실려 있다. 기본적인 배경과 실제 의미는 다를 수 있어도 오늘 날 성공협상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인 ‘상대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장차 빼앗으려 한다면 먼저 주어야 한다(將欲奪之, 必固與之)’라는 고사도 있는데 이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36장에 실려 있다.

지금까지도 내가 후회하는 일이 있다. 중국에서 근무할 때 호형호제하며 지낸 막역한 친구가 있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우리와 중국산 농산물을 거래하던 국영기업이었다. 꽤 오랫동안 잘 해 왔었는데 사고가 났다. 시장가격의 폭등으로 계약이행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밤늦게 찾아왔다. 도저히 이번에는 계약이행이 곤란하니 이번의 손실을 다음 번 비즈니스에서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영기업의 특성상 계약불이행을 상부에 보고하면 자기는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에 보상해 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중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고 비용과 시간을 허비한 채 중국 측에 어이없게 패소하고 말았다. 가장 큰 피해는 좋은 중국 친구를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줄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받기만 할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듯 협상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로부터 최대한 얻어내는 기술이 과거의 협상이었다면 서로의 진정한 가치를 존중하며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까하는 것이 오늘날의 협상이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할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에 집중할 때 협상의 질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기는 협상’과 ‘성공한 협상’이 갈린다.

위선자(魏宣子)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나라를 보존하고 영토를 넓혀 강한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회사를 대표한 중국에서의 나의 가치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설정으로 회사나 개인의 중국에서의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위선자가 임장의 말을 들어 우선 1만호의 영토를 주면서 나중을 도모했던 것처럼 나도, 당장의 조그만 손실에 집착하지 않고 다음 비즈니스에서의 보상을 믿어주는 신뢰를 나의 친구에게 주었어야 했다.

‘인생의 8할은 협상’이라고 한다. 크게는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국가 간의 대형 협상으로부터 작게는 가족과의 사소한 의사소통까지 우리는 협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자국 이익중심의 보수적 성향이 부상하면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 하는 ‘이기는 협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얻어내는 것만을 탐하는 협상이다. 성공적으로 치러진 북미 회담이 앞으로도 진정한 ‘성공한 협상’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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