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에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 ▲전쟁포로 유해 송환·수습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당초 기대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빠졌고 언제까지 비핵화를 이룰 것이냐는 시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때문에 알맹이 없는 회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곧 북한 측과 추가 회담을 가질 것이고 정전 선언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 성공을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얻은 것이 없으며 또다시 북한에 속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주한미군의 철수를 바란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전쟁 놀이”(war game)라고까지 말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은 한·미 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실제 주한미군 철수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어 앞으로 한반도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픽사베이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 직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을 제외한 다른 6개국 지도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특히 싱가포르 회담을 위해 일찍 G7 회담장을 떠난 뒤 몇시간 만에 자신이 직접 서명했던 공동성명을 발표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 대해 “부정직하고 약한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공동성명을 지지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밝혀 다른 G6 정상들은 물론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트럼프가 트뤼도를 공격한 것은 트뤼도가 자신의 관세 부과 결정을 비난한 데 따른 것으로 미국이 발표된 공동성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G7 정상회담은 실패한 회담으로 남게 됐다.

독일 정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사진을 보면 팔짱을 낀 채 앉은 트럼프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다른 정상들이 대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 언론들은 이 사진을 'G6와 트럼프의 대치'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며칠 사이를 두고 이어진 G7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두 사건은 모두 미국이 동맹국들과 대치하며 동맹 관계가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가 미국의 동맹국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달에는 이란과의 핵협정에서 탈퇴한다고 밝혀 핵협정 유지를 원하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동맹국들과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미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으며 유럽과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논의도 중단했다. 지난해 6월에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철수했으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공정하게 분담하지 않고 미국에만 지나치게 큰 부담을 지운다며 이런 점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미국이 나토에 대한 공동 방어의무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동맹국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최근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로부터의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결국 G7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한마디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금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해준 중요한 동맹관계를 더 이상 지키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행동들이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따른 것으로 미국의 수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생각하는 국제관계는 제로섬 원칙과 같은 것이어서 다른 나라가 이득을 얻는 만큼 미국은 손해를 본다는 것이지만, 이는 잘못되고 무지한 생각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70년 넘게 유지해온 아시아 및 유럽과의 동맹관계를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 모두 이익을 얻는 윈-윈 관계를 실현함으로써 오늘날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제까지의 미국은 겉으로는 동맹국들의 이익을 내세우면서도 그 뒤로 미국의 이익을 숨겨넣어 자신들의 속셈을 채워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다르다. 미국의 이익만 내세울 뿐 동맹국들의 이익은 찾아볼 수 없다. 동맹국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끼고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70여년을 이어져온 국제관계에 균열을 가져오고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들이 터져나오게 만들고 있다.

동맹 관계는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지켜질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트럼프의 행동들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온 많은 동맹국들이 그동안 의심하지 않았던 미국의 약속을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체제의 우월성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득을 얻어온 기존의 체제를 무너트릴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세계화가 가져온 경제 양극화와 그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는 이미 국제관계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유럽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우 세력의 확대 등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신 새로운 미 대통령이 취임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신뢰 관계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도 어렵고, 회복된다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동맹관계 뒤흔들기는 그야말로 소탐대실의 전형이자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트럼프의 행동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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