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의 딴생각]

[오피니언타임스=하늘은] 질적 연구란 자료의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려는 연구방법이다. 그래서 통계를 통한 계량화를 지양하고 현장에 직접 들어가 관찰하고 심층면담하고 문헌을 연구한다. 박사논문을 포기한 지 오래지만 나름 질적 연구자랍시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직접 체험해보고 대화를 통해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30대 초입에 대기업을 퇴사하면서 나 같은 또라이가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대기업 청년퇴사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히 검색하다가 이미 질적 연구로 잘 정리된 논문(『대기업 청년 퇴사자의 진정성과 자기계발』, 김초롱, 오세일)을 발견했다. 그들의 연구를 정독해본 결과, 의미 있는 정리라고 생각하여 함께 나누고자 한다.

ⓒ픽사베이

‘대기업 청년 퇴사자의 진정성과 자기계발’에서는 대기업을 퇴사하는 청년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또한 연구의 가정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청년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제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임을 밝혀둔다.

첫째, 기업가적 자아형이 있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 생존주의적 자기계발을 했는데 막상 대기업에 입사해보니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퇴사하는 유형이다. 젊을 때 빨리 돈 벌어 나중에 놀려고 했지만, 대기업 정규직도 장기적 경제 안정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생활 방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기업가적 자아로 명명하는 이유는 자신을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자기경영을 하기 때문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퇴사 이후에도 내로라 하는 기업에 금방 이직을 해버리는 특징이 있다.

둘째, 공존적 자아형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만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유형이다. 주변의 인정을 받고 싶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조직에 적응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이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벤처기업과 NGO단체를 기웃거렸고 현재 국가기관을 맴돌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나처럼 창업을 하거나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기도 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단다. 대기업이라는 거울에 비쳐진 자신을 보며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너무 몰입하면 다음 유형을 소개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만 넘어간다.

셋째, 다운시프트형이 있다. 시프트다운(shift down)은 오르막길이나 커브 길에서 저속 기어를 넣는 행위를 말한다. 즉, 대기업에 입사해보니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조금 덜 벌더라도 여유 있게 즐기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고 저속 기어를 넣기 위해 퇴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식 경쟁을 멈추고 오직 자신을 위한 자기계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중소기업으로 이직하여 적게 벌면서 퇴근 후 삶을 즐긴다. 이 유형이야말로 요즘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지난 2년간 인사담당자로서 구직자들을 만나본 결과, 대다수의 청년들은 높은 연봉과 무모한 희생 세트(set)를 과감히 거절하며 개인의 삶을 돌아보길 원한다.

넷째, 모라토리움형이 있다. 대기업 입사 후 승승장구하여 자아실현을 하려고 했지만 회사에서는 내 꿈 따위 배려해주지 않기에 결국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퇴사하는 사람들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마케팅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계담당자로 발령이 나서 왜 일하는지도 모르고 일한단다. 거대한 대기업 시스템일지라도 커다란 우주인 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들은 퇴사 후 자신이 원했던 의미와 보람을 되찾기 위해 자기계발을 시작한다. 대기업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진검승부를 펼쳐보려는 그들의 꿈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곳은 여전히 대기업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시아 국가 중 한국 학생들이 유독 ‘높은 기본 급여’를 중시하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고통스러운 시행착오를 직접 경험하기 전에 지혜롭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높은 기본 급여 뒤편에 가려진 진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 번뜩이는 회사 브랜드 밑바닥에 뭉개진 숨진 자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짜 원하는 삶이 과연 ‘대기업’ 그 자체인지. 우리는 어쩌면, 취업포털에 접속할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굳이 이런 논문을 들춰보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의 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자. 단 1년도 허비하지 말자.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생각보다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하늘은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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