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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 숲속의 여왕, 얼레지

기사승인 2019.04.17  11: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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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들꽃여행] ‘피겨 여왕’ 김연아 뺨치는 S라인의 발레리나

학명은 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논객칼럼=김인철] 어느덧 4월 중순. 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꽃보다 예쁜 새순이 돋으며 숲은 연두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꽃도 좋지만, 싱그러운 새순과 새 이파리가 만드는 아련한 봄의 정취가 더 좋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즈음, 지난 가을 떨어진 갈잎이 켜켜이 쌓이고 그 위에 겨우내 눈이 덮여 있어 비옥하기 이를 데 없는 산기슭에선 홍색의 봄꽃이 너도나도 늘씬한 미모를 뽐냅니다. 누구는 S라인의 팔등신 미녀 같다고 하고, 누구는 날렵한 셔틀콕이 연상된다고 합니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에서 수천, 많으면 수만 송이의 붉은 꽃이 발아래 가득 피어나니, 산중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라 이를 만합니다.

신록의 봄 전국의 산기슭을 ‘천상의 화원’으로 만드는 얼레지 군락의 개화 모습. 3월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핀다. Ⓒ김인철
Ⓒ김인철

보통 꽃 한 송이에 두 장의 이파리가 달리는데, 짙은 녹색의 이파리에 얼룩덜룩한 자갈색 무늬가 있어 얼레지란 이름을 얻었다는 백합과의 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25cm 안팎의 꽃대 끝에 아이 주먹만 한 꽃이 한 송이씩 달립니다. 그런데 길이 5~6㎝, 폭 5~10mm의 꽃잎 6장이 마치 올림머리를 하듯 뒤로 둘둘 말려 있습니다. 그 꽃 모양이 ‘피겨 여왕’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처럼 날렵하고 우아합니다. ‘춤추는 숲속의 발레리나’를 보는 듯도 합니다. 붉은색 무용복을 차려입은 수백, 수천 발레리나들의 군무라니, 그 얼마나 환상적일까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6장의 꽃잎이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모습을 보려면 햇살이 충분히 드는 정오 무렵이 되어야 합니다. 밤사이 오므라들었던 꽃잎이 다시 열리려면 충분히 볕을 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마 탄 왕자’인 양 위풍당당한 흰얼레지. 꽃 색만 다를 뿐이지만 별도의 학명(Erythronium japonicum for. album T.B.Lee.)을 가진 별도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그런데 남녀노소 서슴없이 좋아하고 가까이 다가서는 꽃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식물의 생식기관입니다. 그 안에 수술과 암술이 있고, 벌·나비 등을 불러들여 가루받이를 하고 생명의 씨를 잉태해 종족 보존의 숭고한 의무를 수행합니다. 얼레지 꽃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뒤로 젖혀진 꽃 가운데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밤새 꽃잎을 오므린 채 수줍은 표정을 짓다가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내주겠다는 듯 속살을 활짝 열어 보이니, 그 반전이 순박한 산골 소녀에서 도시 처녀로의 변신인 양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게다가 꽃 가운데 W자 모양으로 아로새겨진 보라색 무늬가 멀리서도 선명합니다, 가루받이를 도울 벌·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일종의 ‘길라잡이용 문신’을 한 셈인데, 그 적극적인 구애의 속내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질투’ 또는 ‘바람난 여인’이라는 얼레지의 꽃말이 참으로 그럴싸합니다. 얼레지의 영어 이름이 ‘도그투스 바이올렛(Dogtooth Violet)’인데 W자 형태의 무늬에서 연유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서양인들에겐 이 무늬가 송곳니처럼 보였나 봅니다.

W자 모양의 무늬와 길이가 다른 6개의 수술, 3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얼레지 꽃. 2019년 4월 15일 경기도 용문산에서 만났다. 잦은 봄눈과 꽃샘추위 때문인지 고지대는 여전히 얼어 있고, 저지대 숲에서만 겨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경북 포항의 바닷가 야산에서 2017년 3월 17일 담았다. 곳에 따라 기후에 따라 꽃 피는 시기가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다. Ⓒ김인철
Ⓒ김인철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얼레지 또한 쉽게 피지 않습니다. 모든 걸 다 내주듯 꽃잎을 활짝 열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곤충을 유혹하여 맺은 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튼다고 해도, 무려 5~6년이 지나야만 꽃대를 올리고 개화할 수 있습니다. 대여섯 번의 겨울과 여름을 겪어야만, 그만큼의 천둥과 번개, 태풍 등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쏟아진 봄눈에 갇힌 얼레지.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야 꽃잎이 벌어지는 특성상 눈이 녹은 곳의 얼레지만 겨우 개화했다. Ⓒ김인철
Ⓒ김인철

이르면 3월부터 늦게는 5월까지 전국 곳곳의 명산이 얼레지 꽃으로 붉게 물들 만큼 자생지도 넓고 개체 수가 풍성합니다. 수도권에서도 화야산을 필두로 광덕산, 천마산, 화악산, 운길산, 용문산, 유명산 등 여러 산이 서울서 가까운 얼레지 꽃동산으로 꼽힙니다. 전국에 분포한다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단 한 포기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곳의 야생화 애호가들은 얼레지를 보려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nongaek.com)도 보장합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atomz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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