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청년칼럼=김우성] 어느 중학교 앞을 지나쳤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걸어 나왔다. 수업이 다 끝났나보다. 친구들에게 농담 건네며 키득거리는 아이, 떡볶이 컵을 손에 쥐고 가는 아이, 휴대폰 들여다보는 아이. 여러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에는 나도 중학생이었는데... 이들에겐 내가 아저씨로 보이겠지?

아이들 표정이 밝았다.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이라서 그랬을까. 사는데 큰 문제가 없어서일까. 나도 10년 전 저런 표정으로 살았었나? 나는 중학생 시절을 어떻게 보냈지?

Ⓒ픽사베이

10년 전 내 꿈은 프로 테니스 선수였다. TV에서 페더러와 나달의 경기를 보고 테니스 재미에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다짐했다. TV 속 코트를 실제로 밟겠다고. 꿈이 생긴 후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매일 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수십 번 하고 잠들었다. 심폐지구력 기르려고 조깅을 했다. 레슨도 받았다. 포핸드, 백핸드, 발리, 서브, 스매시를 배웠다. 그렇게 한걸음씩 목표에 다가갔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는 견고했다. 윔블던 센터코트를 누비는 나의 모습을 매일 상상했다.

아버지는 내 꿈을 강하게 반대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와 언쟁을 벌였다. 공부해서 대학 가고 공무원 되라는 아버지와 운동이 미치도록 하고 싶다는 아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네가 나달을 이기는 건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목사님, 레슨 코치 등 주위 어른들에게 내 꿈을 밝히자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테니스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까지 단호하게 반대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내가 미련한 걸까. 철이 없는 걸까. 남들은 안 된다고 하는데, 혼자 가능하다고 우기는 내가 어리석은 걸까. 모두가 “아니”라는 가운데 혼자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아무도 나의 꿈을 응원하지 않는 상황. 나의 유일한 팬은 나 자신이었다. 외로운 싸움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나의 꿈은 바뀌었다. 10년 전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도 변한 걸까. 철옹성 같았던 나의 꿈이 어찌 이리 무너졌단 말인가. 그동안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기에 이렇게 되었지? 설마... 철이 든 걸까?

부모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

“나중에 네 자식이 운동선수 되겠다고 하면 너는 선뜻 찬성할 것 같니?”

당시 나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확신에 찬 어조로.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망설여진다. 내 자식이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비록 아이 실력을 두 눈으로 본 적 없음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어려울 것 같다. 10년 전 강경하게 나왔던 부모님처럼, 그리고 주위 어른들처럼. 10년이 지난 지금, 그토록 미웠던 어른들 대열에 나도 합류하기 일보 직전이다. 나도 부모님과 똑같아지는구나. 소름이다. 미래의 내 자식아, 미안하다.

우승 트로피 들어올리고 억대 연봉 받는 인생을 꿈꿨다. 그게 성공이고 행복이라 믿었다. 물론 그런 삶이 성공한 것이고 행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많을 테니, 한 길만 고집하지 말아야지. 선택지는 다양하니까. 정답은 없으니까. 한 살 두 살 나이 먹으면서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여유 갖는 법을 배웠다. (여유 갖는 법이라 쓰고 포기하는 법이라고 읽는다.)

봄이다. 벚꽃이 흩날린다. 손꼽아 기다려왔던 연분홍 벚꽃이 바람결에 하나 둘씩 떠나가는 게 아쉽다. 하지만 대신 자리잡은 녹색 잎이 보기만 해도 시원해서 마음에 든다. 인생샷 찍으려 나타나기만 기다려온 벚꽃이나, 별 생각 없었던 녹색 잎이나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건 마찬가지.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꿈 실현하는 것도 좋고,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과 마주하는 것도 좋다. 어떤 길을 가든 행복할 수 있기를.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거면 됐다.

 김우성

낮에는 거울 보고, 밤에는 일기 쓰면서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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