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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좋은 말들

기사승인 2019.05.10  11: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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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인의 정화수]

[논객칼럼=도영인] 이 세상은 말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상적인 언어들이 언제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말들을 일상생활에서 의식하고 사는가에 따라 삶의 패턴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이 평범한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최근에 몇 개의 중국 도시들을 방문하는 여정에서였다.

3.1독립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주관한 평화순례여행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상해, 항주, 남경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시내를 지나가는 버스 창밖으로 거창하게 늘어선 고층건물 이외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리 벽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힘찬 단어들이었다. 자본주의를 과시하는 상업용 간판들은 주로 상가단지에서 볼 수 있는 반면에 그 밖의 대로의 담벼락들은 사회주의 질서를 표방하는 좋은 말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平等(평등), 正義(정의), 博愛(박애), 公正(공정), 公安(공안), 道德(도덕) 등의 글자들이 필자의 눈에 확 들어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인간의 권리, 의무, 자격 등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부여함으로써 차별 없이 국민들을 사랑하는 올바른 도리를 펼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또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보장하는 사회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필자의 눈에는 이 순수한 추상적인 단어들이야말로 산업혁명 이전에 세계를 주름잡던 동양문명세력을 주도해 온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신문화 뿌리를 과시하는 상징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과연 이런 추상적인 말들이 실제로 그 언어들이 가진 잠재적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혼합된 현대 중국사회에서 이 좋은 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픽사베이

필자는 중국에서 유학 온 중국학생을 가르치고 상담 지도했던 경험이 있다. 인지지능 면에서 뒤떨어질 뿐만이 아니라 게으르기까지 하여 유학 온 지 3년이 넘도록 한국말을 전혀 익히지 못한 학생이었는데 그렇다고 영어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 학생과 상담하는 일이 고역에 가까웠다. 시험을 치러야 할 때는 한국말과 영어에 능통한 중국인 유학생의 통역을 필요로 하는 지경이었다. 교수들 사이에서 졸업자격여부를 두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중국공산당 고위간부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유명대학에 중국유학생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성공한 백만장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증가해 온 중국의 경우에 해외유학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유학 갈만한 실력을 갖춘 모든 중국인 학생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게 주어졌는지 그 공정성을 의심해 볼 수 있겠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할 때 일어난 일인데 IMF시절에 더 이상 학비 조달이 불가능해진 많은 수의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생겼었다. 미국대학들은 호경기에 한국과 중국 등에서 대거 유학 온 학생들이 지불하는 학자금에 학사재정을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터라 황금알을 낳는 이 유학생들을 붙들어 두기 위해 부랴부랴 새로운 장학금마련 등 학사정책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국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워진 시점에 미국대학이 수여하는 장학금혜택에 의존한 유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자신의 학업실력과는 관계없이 한국이나 중국의 특권층 자녀들은 계속 남아서 유학생 신분을 유지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돈의 힘 앞에서 이상적인 말의 힘이 무력해지는 것은 공통된 사실인 것 같다. 중국 공산당 당원들의 자녀가 호화로운 유학생활을 즐긴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유학 간 소위 ‘있는 집’ 자제들이 많은 돈을 너무 쉽게 탕진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불편한 사실일 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언어들 가운데 자유와 행복이 으뜸이다. 자본주의 위주의 국가일 경우에 자유라는 이념을 먼저 우선가치로서 중시하고 그 다음으로 누구나 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성공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유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국가가 펼치는 다양한 복지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은 극심한 불평등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평등을 최우선적인 정치철학적 가치관으로 섬기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독재 권력층과 소수 공산당원을 위한 특혜가 불평등하게 적용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자유, 평등, 박애 등 이념을 중시하는 사회들에서 각기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추상적인 이념과는 무관하게 돈의 힘은 어디서나 불평등 현상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추상적인 이상을 담은 언어들의 힘은 물질주의 위주의 실제 생활상 속에서 그 찬란한 정신문화적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퇴색된다. 그 반면에 이념적인 정치적 갈등과는 무관하게 천민자본주의는 미국, 한국,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그 위세를 펼치고 있다.

사회주의 가치관을 표상하는 언어의 힘과 자본주의 사회의 헌법 구절 어딘가에 사문화된 말의 힘을 훨씬 더 강력하게 능가하는 것은 물질주의 유혹의 향기이다. 중국 거대도시들의 담벼락들을 단정하게 장식하고 있는 말들 속에 종교 또는 영성이라는 단어는 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서 손에 잡히는 행복을 구매하라고 소비자들을 부추기는 상업광고 문구의 힘이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욕구이외에도 이상적이고 자기초월적인 욕구를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자기이익 앞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평등이나 박애와 같은 추상적인 언어의 힘은 쉽사리 위축되고 만다. 필자를 포함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편리함을 필요로 하고 물질주의에 푹 빠진 세상에서 점점 더 효율적으로 제공되는 안락함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지만, 배고픔 앞에서 정의가 무너지는 일은 인류역사 속에서 너무도 흔히 경험해 왔다.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배고픔이라는 것이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의식주 욕구를 적당한 선에서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만족할만한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 위험한 탐욕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위가 허락하는 적정수준을 넘어서 무의식적인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계속 먹어대는 경향이 있다. 남보다도 훨씬 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좋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과 사치품이외에도 마약에 손대는 이유는 정신적 가난함과 공허한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갈급함 때문이다.

정치영역에서 사회주의이념을 추종하는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물질적 불평등현상은 최근에 더욱 심각해진 상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양극화와 불평등을 부추기는 천민자본주의가 점점 더 문제시 되는 것은 소비 위주의 일상 생활패턴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정신적 자아성장에 무관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물질문명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국가나 사회주의국가 모두 다 인류가 성장시켜 온 정신문명의 뿌리에 다시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나도는 모든 좋은 말들이 현실생활에서 생동감 있게 그 효력을 발생시키려면 물질에서 정신으로 인류발달단계의 원동력을 옮겨가야 한다. 인류문명을 지탱해 온 근원적인 초월의식의 힘과 영성지능적인 영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좋은 모든 말들은 현란한 물질문명의 장벽을 넘어서는 진정한 자유의 힘을 새롭게 발산시켜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과 손잡고 모두 다함께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진정한 언어의 힘을 발휘할 때이다. 추상적인 이념이 세운 나약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진정성 있는 좋은 말들이 갖는 한민족 본래의 정신문화적인 힘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때가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박물관에서 관람했던, 일본인들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만행으로 인해 처참하게 죽어간 중국인 희생자들의 하얗게 마른 뼈들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중국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난한 임시정부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던 독립 운동가들의 메마르고 굳어버린 얼굴표정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제국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결국 부질없는 이념갈등이 불러 온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진리의 말들이 다시 살아나오기를 바란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찬란한 말들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실천하는 지혜의 힘은 이념간의 벽을 무너뜨리는 정신문명의 뿌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사회는 공허한 이념갈등을 버리고 우리의 집단의식을 진정성이 있는 말의 힘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한국인 모두가 이상세계를 표상하는 말의 힘을 실천행동으로 옮길 때 새로운 융합의 기운을 창조할 수 있다.

도영인

한 영성코칭연구소장
영성과 보건복지학회 고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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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인 ssdoe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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