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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담당 장관을 둔 영국인들의 발상

기사승인 2019.05.22  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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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웅의 촌철살인]

[논객칼럼=김철웅] 외로움과 고독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순우리말과 한자어란 싱거운 소리 말고. 둘 다 혼자 있는 시간인 건 맞지만 외로움(loneliness)은 상대방의 부재를 절감하는 상태, 고독(solitude)은 홀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상태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고독은 단련이란 어감이 있는 반면 외로움은 거기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 강하다.

지난해 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트레이시 크라우치란 여성 의원(44)을 신설된 외로움 문제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에 임명했다. 그는 스포츠·시민사회 장관과 외로움 담당 장관을 겸임하게 됐다. 당시 든 생각은 이렇다. 외로움·고독이 안 좋다는 건 안다. 그런데 정부에 외로움 담당 장관까지 두다니, 영국인들도 많이 외로운가 보다.

Ⓒ픽사베이

며칠 전 정치철학자 김만권이 프레시안에 쓴 ‘나는 외로움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바란다’는 칼럼을 읽고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6600만 명의 인구 중에 900만 명가량의 영국인들이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조 콕스 위원회’ 조사 결과를 밝힌 뒤 이렇게 묻는다. “그래도 외로움 따위를 다루는데, 장관이 필요하다니. 속된 말로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칼럼은 그러면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경쟁적 소비사회가 만드는 집단적 외로움 때문임을 논증한다.

영국의 장관제는 우리와 달리 좀 복잡하다. 우선 장관(minister)이라 불리는 직책이 120개나 된다. 그중 내각회의에 참석하는 장관은 25명으로 ‘내각장관’(cabinet ministers, 또는 secretary of state)이라 부른다. 외로움 담당 장관직은 영어로 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이다. 엄밀히 말하면 준장관(또는 정무차관)이지만 보통 장관이라고 부른다.

이런 차이를 감안해도 현대 사회의 ‘신종 전염병’인 외로움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정부에 각료급 인사를 둔 의미가 퇴색하는 건 아니다. 크라우치 장관은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차로 11월 사임했고 동갑 여성인 웨일즈 준장관 마임스 데이비스가 후임에 임명됐다.

외로움 장관은 무슨 일을 하나. 그는 범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대응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책임자 역할을 한다. 폭넓은 연구와 통계작업을 이끌며 외로움을 체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한다. 원래 외로움 문제를 주도하던 인물은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었다. 불행히도 그녀는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와중에 ‘영국 우선’을 외친 극우주의자에 의해 살해됐다. 그 뒤 구성돼 초당적인 활동을 해온 곳이 조 콕스 위원회다.

외로움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 개연성이 높다. 줄리언 홀트-룬스타드 미국 브리검영 대학 교수는 2010년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 콕스 위원회는 “고독은 개인적 불행에서 사회적 전염병으로 확산됐다”면서 고독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4월 영국 외로움부는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그 결과 영국 16세 이상 인구 45% 정도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중 5%는 “항상/자주”, 16%는 “때때로”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가끔” 느낀다는 응답은 24%였다. “거의, 또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55%였다.

한국은 어떨까. 그 직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웹 조사 결과는 이렇다.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응답자의 7%가 최근 한달 간 “거의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고, 19%는 “자주”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4명 가운데 1명이 상시적 외로움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나머지 51%도 “가끔”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한국인이 영국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영국처럼 외로움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는 건 어떨까. 한국리서치 질문에 40%는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고 답했고, 46%는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짐작하건대 반대에는 이런 생각도 있을 것이다. 외로움 담당 장관, 지금이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할 때인가?

그래서 얻는 결론은 이것이다. 중요한 건 외로움에 대한 인식전환이고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도, 늘어나는 고독사 문제도 ‘외로운 한국인들’과 떼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철웅 kcu5712@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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