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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이어폰처럼

기사승인 2019.06.11  10: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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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주의 혜윰 행]

[청년칼럼=최미주] 종이컵 두 개와 실로 전화기를 만들어 본 적 있나요? 종이 끝에 구멍 뚫고 실을 연결하면 간단하게 전화기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종이컵 한 짝은 내 귀, 나머지는 친구 입에 대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후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합니다. 짓궂은 친구가 손으로 실을 잡아 전달을 막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친구의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함께 노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을 잡은 친구가 히죽히죽 웃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와 유선 이어폰 한 짝씩 나눠 끼고 같은 노래를 들어 본적 있나요? 나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상대방의 이어폰이 꿈틀꿈틀합니다. 일부러 친구를 놀리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봅니다. 친구의 귀에서 이어폰 한 짝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멀리 떨어지고,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보고 말이죠. 강제로 선이 이어진 탓에 서로 몇 시간씩 같은 음악을 듣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 사이가 더 돈독해졌죠. 

Ⓒ픽사베이

최근 무선 이어폰이 필수품이 돼 갑니다. 저 역시 오빠에게 무선 이어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죠. 유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입을 삐죽 내민 채 ‘선이 불편해요.’ 애교를 보태 투정했습니다. 그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일단 입막음을 했습니다. 한동안 그걸로 잘 버티다 요즘 다시 무선 이어폰 타령을 했습니다. 성능을 운운하던 그가 드디어 큰마음 먹고 쇼핑 사이트를 뒤집니다. 

이것저것 찾던 오빠가 사주기도 전에 덜렁거리는 동생이 물건 잃어버릴 걱정부터 합니다. 중고 사이트에 이어폰 한 짝만 잃어버려서 나머지 한 짝을 파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내가 그렇게 될 것 같다나. 선이 없는 탓에 자신도 모르게 이어폰이 귀에서 빠져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무선 이어폰을 안 낀 사람보다 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어떤 할아버지는 요새 젊은이들이 귀에 콩나물 같은 걸 달고 묻는 말에 대답을 않는다며 불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옆 친구와 노는 것보다 인터넷 속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더 즐깁니다. 방송, 드라마를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거죠. 그때 이어폰은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런 행위를 소통이라 볼 수 있는가는 의문입니다. 화법에서 소통이란 화자와 청자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입니다. 화자와 청자가 대화에 집중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려고 진정으로 노력하는 것. 그렇게 대화 참여자만의 공통된 의미를 만드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죠. 이런 소통을 즐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아마 귀에서 이어폰을 낀 시간이 뺀 시간보다 많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 눈앞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죠. 방송 유명인의 먹거리, 취미를 친한 친구의 일상보다 더 잘 알게 될 지 모릅니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린 진정한 소통이 무서워, 혹은 귀찮아 이어폰으로 귀와 마음을 닫아버린 게 아닐까요?

실 전화기를 만들던 저도 드디어 무선 이어폰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걸 친구와 한 짝씩 나눠 끼고 같은 노래 듣는 상상을 하니 왠지 흥이 떨어집니다. 내 움직임이 친구에게 영향을 적게 미칠 것 같아서요. 순간 자리를 뜨면 같은 이어폰을 끼고 있단 사실조차 잊겠죠? 그렇게 따로 한 짝씩 멀어지는 건 아닐지. 

선이 없는 이어폰이 나도 모르게 떨어지지 않게 더욱 조심해야겠어요. 선물 준 오빠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짝만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죠. 덩달아 끈끈함을 점차 잃어가는 인간관계가 없는지도 점검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해요. 편해질수록 더 소중히 다루어야 하잖아요. 무선 이어폰처럼.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미주 cmj7820@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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