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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모택동의 대화

기사승인 2019.07.10  1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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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복의 고구려POWER 22]

[논객닷컴=김부복] 북한 지도자 김일성(金日成)이 1950년대 중반 중국의 모택동(毛澤東)과 만나 회담할 때였다. 회담 장소는 중국 요녕성(遼寧省)의 개현(開縣)이라는 곳이었다.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회담을 하고 있는 개현이 우리의 옛 고구려 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지역 연고성을 은근하게 내비쳤다.

그러자 모택동이 껄껄대며 말했다.

“땅을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개현의 ‘개(開)’를 고구려 연개소문의 ‘개(蓋)’로 고쳐주면 어떻겠나.”

이후부터 ‘개현(開縣)’은 ‘개현(蓋縣)’이 되었다고 했다. 김일성은 사망하기 전에 몇몇 방북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지명을 고친 이야기를 자랑삼아 들려줬다고 한다. 김일성에게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만주 땅에는 아직도 고구려가 곳곳에 남아 있다.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 강기준 지음>

Ⓒ픽사베이

만주의 대안현(大安縣)이라는 곳에는 ‘대고려방향(大高麗房向)과 대고려방촌(大高麗房村), 북고려방(北高麗房), 소고려방(小高麗房) 등이 있다. 주민 가운데도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이들 집안에서 ‘고씨 족보’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떤 ‘고씨 족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집안의 가계는 조선(고구려) 국왕 고련(高璉∙장수왕)의 후손이다. …명나라 초에 고령고공(高靈古公)이 요양오녕위 지휘사(遼陽遼寧衛 指揮使)의 직을 세습하도록 봉해져 여러 세대에 걸쳐 세습했다. 또한 집안은 회원장군(懷遠將軍)을 세습하도록 봉해졌으나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뀐 후 관직을 모두 잃었다. 이후 후손들은 각처에 은둔하다 보니 두드러진 관작을 갖지 못했다.…” <고구려제국사, 서병국 지음> 

요녕성 심양(沈諹)시 원수부(元帥府) 고려영자촌(高麗英子村)이라는 곳에는 강이식(姜以式) 장군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강이식 장군은 수나라를 세운 문제(文帝)가 고구려에 ‘오만한 국서(國書)’를 보내오자, “이런 국서에는 칼로 대답해야 한다(以劍可答)며 ‘선제공격’해서 제압한 고구려의 영웅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지만, 만주 땅에는 영웅 ‘강이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영자촌’은 ‘영웅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여서 더욱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올해 2019년은 ‘단기 4352년’이다. 그 4300년 ‘민족사’ 중에서 우리가 이른바 ‘한반도’만을 강역으로 살아온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발해 멸망 이후’를 따지면 고작 ‘1000년’이다. 우리는 3300여 년을 만주에서 살아온 ‘대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의 영토도 ‘두만강 북쪽 700리’에 이르기도 했다. 국력이 오그라들었던 조선 때에도 ‘간도’는 우리 땅이었다. 남한 면적의 절반이나 되는 좁지 않은 땅이었다. 우리는 조선시대 말까지도 만주의 일부를 우리 땅으로 하고 있었다. 만주 곳곳에 우리 지명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만주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하기도 했다.

“만주와 한반도는 서로 돕는 관계에 있다. 대륙은 밥 먹는 곳, 힘 기르는 곳이요, 바다는 힘쓰는 곳, 재주부리는 곳이다. 만주평원은 한반도라는 출입구를 얻어서만이 발달할 수 있는 것이요, 한반도는 만주라는 배경을 얻어서만 뿌리를 박고 안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지명마저 ‘중국식’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었다. 우리는 ‘연변’을 ‘옌볜’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연길’을 ‘옌지’라고 하지도 않았다. ‘북경’을 ‘베이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심천(深圳)’이 맞는 발음인지, ‘심수’가 맞는 발음인지 입씨름을 하면서도 ‘선전’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옌볜’, ‘옌지’, ‘선전’이고 ‘베이징’이다.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던 ‘요녕’도 ‘랴오닝’이다. 심지어는 광개토대왕의 비가 있는 ‘집안’은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그마저 ‘지안’이라고 하고 있다. ‘발해(渤海)’는 ‘밝은 해’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일 수도 있다는데 ‘뽀하이’다. 

중국동포마저 그런 우리를 희한하게 여기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왜 ‘연변’을 ‘옌볜’이라고 하고, 조선족을 중국 사람으로 몰고 있나” 반문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차량 행렬이 지나는 도로에서 수십만의 평양시민이 ‘습근평’을 연호했다고 한다. ‘시진핑’이 아니라, ‘습근평’이었다. 

한글과 중국어로 쓰인 플래카드도 ‘습근평’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습근평 동지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환영 습근평”이라는 플래카드였다는 보도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권 수립 70주년인 ‘9·9절’을 축하해준 시 주석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보낸 전문에도 ‘습근평 동지’였다. “습근평 동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에 즈음하여 열렬한 축하와 진심으로 되는 축원을 보내준 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발끈하고, ‘역사 왜곡’에는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북쪽이 우리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만했다. 

고칠 것은 더 있다. 영화 ‘안시성’ 덕분에 유명해진 양만춘 장군이다. 양만춘을 우리는 안시성의 ‘성주’라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구려 때 관직은 ‘처려근지’였다. ‘처려근지 양만춘’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이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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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복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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