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암수딴그루…암꽃은 아주 귀해

박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hladiantha dubia Bunge

[논객칼럼=김인철]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한 번 만난다는 음력 칠월칠석 하루 뒤인 지난 8월 8일 충북 보은군의 한 농촌 마을. 길가 한편에 고추가 자라는 작은 텃밭이 있고, 그 텃밭 돌담을 녹색의 덩굴이 가득 뒤덮은 가운데 노란색 꽃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달려 있습니다. 담장 옆 전신주를 타고 오른 덩굴은 빈 하늘로 몇 가닥 손을 뻗었고, 줄줄이 꽃을 단 채 허공에 늘어져 있습니다. 가만 꽃을 살펴보니 연노랑 색에 호박꽃보다는 작고 오이꽃보다는 다소 커 보입니다. 꽃 구조는 노란색 꽃 바로 뒤에 짙은 녹색의 동그란 씨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전형적인 박과(科) 식물의 꽃 형태를 보입니다. 박과의 원형 또는 타원형 씨방은 시일이 지나면서 점점 커져 훗날 착한 흥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 주는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박이 되기도 하고, 수박·참외·오이·호박이 되기도 합니다.

경북 군위의 한 농촌 마을에 노란 왕과꽃이 가득 피어 한여름 시원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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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참외. 여름철 과일의 대명사라 이를 만합니다. 여기에 오이와 호박까지 더하면 여름은 가히 박과 식물 세상입니다. ‘봄에는 나물을 먹고, 여름에는 박과 식물을 먹고, 가을에는 과일을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 중국의 민간 속담에 나오는 말이라 하는데, 우리의 생활양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진한 녹색의 왕과 열매. 타원형의 열매는 물론 줄기, 잎에도 흰털이 무수히 나 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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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과 식물은 한자어 이름으로 모두 오이 '과(瓜)' 자가 들어갑니다. 오이는 황과(黃瓜), 참외는 첨과(甛瓜), 수박은 서과(西瓜), 호박은 남과(南瓜), 수세미외는 사과(絲瓜), 박은 포과(匏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이 과(瓜) 자를 쓰는 박과 식물 중에 임금 ‘왕’ 자를 쓰는 '왕과(王瓜)'가 따로 있습니다. 글머리에서 호박꽃 같기도 하고 오이꽃 같기도 한 연노랑 꽃을 피운다고 장황하게 소개했던 덩굴 식물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 그리고 암꽃 아래 불룩한 씨방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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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한여름 끝이 5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는 통꽃으로 무수하게 달립니다. 호박꽃처럼 볼품없이 펑퍼짐하지 않되 오이·참외꽃처럼 너무 자잘하지도 않은, 나름대로 단아하고 균형이 잡힌 게 박과 식물의 꽃 중에선 가장 볼 만하니 왕과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꽃이 다소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왕’ 자가 쓰였을지는 의문으로, 이름의 연유는 물론 쓰임새 등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식물입니다. 특히 왕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자웅이주(雌雄異株) 식물인데, 암꽃과 수꽃이 가까운 거리에서 자라는 게 확인된 바 없다니 어떻게 결실을 보고 번식하는지도 연구 대상입니다. 물론 수꽃의 경우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게 분명하니, 알뿌리로 증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수술과 씨방이 없는 수꽃.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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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각처에서 자란다고 도감은 설명하지만, 실제로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암꽃을 보기는 더욱더 어렵습니다. 필자가 2013년과 처음 수꽃을 만난 뒤 무려 6년여를 애태우다 올여름 암꽃을 봤으니, 일 년에 한 번 이뤄진다는 견우와 직녀의 상봉보다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텃밭의 주인은 “흔하디흔한 호박꽃을 닮은 게 무에 그리 좋다고 멀리까지 찾아오냐.”면서 “엄지손가락만 한 열매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넝쿨만 수북이 돌담을 휘감아 베어버리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쥐참외 또는 애기참외라고 부르는, 길이 4~5cm, 폭 3cm 정도의 작은 열매가 아직은 별 소용이 없으니 그저 유해 식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종 다양성 보존’이란 당위성에 더해 ‘적박(赤雹)’이라고도 불리는 붉은 열매의 미래 가치 등에 대한 연구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붉게 익은 열매 안에는 길이 5mm, 폭 3mm 정도의 종자가 10개 안팎 들어 있다고 합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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