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의 하프타임 단상 19]

[논객칼럼=최하늘] “뭘 해야 하지?”

지난날을 돌아보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하프타임을 보내며 가장 많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내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인생에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잔잔히 미소지을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다.

머릿속에 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동년배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으로 이 시즌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 삶에 힌트가 필요해서다. 어쩌면 어설프게 나의 답안지를 써 놓고 오답을 적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은 생각이지만, 나에게 삶의 멘토가 없다는 게 아쉽다. 나보다 10년쯤 앞장서 가면서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를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것은 어쩌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갑자기 맞닥트린 장수 시대에 덤으로 주어진 30년을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문득 ‘철부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알지 못하는(不知) 사람을 일컫는다. 이제 내 인생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든 것을 알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니 철부지나 별반 다를 게 없겠다.

내 카카오톡 계정의 프로필 메시지에 몇 년째 떠 있는 문구가 있다. The best is yet to come! 그렇다. 중의적(重義的)으로 써 놓은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 특히 인생의 시즌에서 그렇다. 나는 이제 막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계절의 문에 들어선 것이다.

자연의 사계절에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지만, 이들의 우열을 가를 수는 없다. 인생의 사계절도 마찬가지다. 계절마다 그 의미가 있다. 그러니 이 역시 호불호는 갈려도 우열을 매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인생의 가장 멋진 계절로 가을을 꼽는다.

시즌의 의미를 두고 끙끙대는 나에게 “흐르는 대로 가면 되지, 뭐가 그리 심각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많이 털어냈지만 내 안에 완벽주의 기질이 남아 있어서 그럴 수 있다. 형식이 내용을 이끈다는 생각도 한다. 계절의 흐름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할 일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선택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맞고 있는 시즌에 ‘서드 에이지’(third age·제3연령기) 개념을 적용한다. 이 말은 원래 유럽에서 처음 사용한 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그들은 40~70세의 30년 삶을 서드 에이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의 서드 에이지는 60세 이후 20년 정도를 잡고 있다.

Ⓒ픽사베이

이제 내 서드 에이지의 막이 오른다. 배움의 시즌(first age) 30년을 보내고, 가정과 일이 중심된 사회정착 시즌(second age) 30년을 지나, 인생을 완성하는 시즌에 들어선 것이다. 이때가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이고, 제2의 성장을 이루는 시기라고도 한다. 이어 인생의 마지막 시즌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노화의 단계(fourth age)로 가게 될 것이다.

서드 에이지는 100세 시대가 되면서 우리에게 보너스로 주어진 시간이다. 이전 세대에는 없던 개념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준비 없이 들어서는 미지의 세계다. 다만 우리보다 20~30년 앞서 살아간 인생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젊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시즌이라고.

그럼에도 이 시즌 앞에서 밀려오는 부담감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지나온 세월에는 시즌마다 내 손에 들려주는 지도가 하나씩 있었다. 지도를 따라가면 적어도 길에서 크게 벗어날 위험은 없었다. 학생 때는 공부를 하면 됐다. 잘하고 못하고 차이는 있어도,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후에 맞는 30년은 가정과 일에 성실하면 큰 오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지도 한 장 없이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기분이다. 내가 가야 할 길과 걷고 있는 길 사이에 간격이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세밀한 길은 지금부터 찾아야겠지만, 이 시즌에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이 내 인생 최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계절이 갖는 분명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추석이 되면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덕담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보장은 이 시즌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겨있다. 마음을 열고 세월을 맞이하다 보면 그들에게 행복의 열쇠가 쥐어진다.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이로 인해 점차 타인에게 관대해지고, 좀 더 느긋하게 사는 능력이 생긴다. 현재의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법도 배운다. 육체가 쇠퇴해 가도 내면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서드 에이지를 제2의 성장기이고, 최고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하바드대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중년에 관한 연구를 해온 윌리암 새들러 박사는 은퇴 후 30년의 삶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면서 ‘서드 에이지는 곧 핫 에이지(hot age)’라는 등식을 세웠다. 그는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 이어 내놓은 책 ‘핫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서 은퇴자들이 육체의 부활, 원기회복, 영적 재생, 자아의 재발견, 회춘, 인생의 방향 수정 등을 통해 ‘뜨거운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새들러 박사는 핫 에이지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젊었을 때와 달리 내면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도 지탄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핫 에이지를 사는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는데 자기가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여가를 즐길 목적으로 하며, 능동적 삶으로 정신적 젊음을 유지한다. 또 가족 외에 많은 사람과 교제하고 베풀면서 행복을 느끼고, 항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서드 에이지는 마흔 이후 30년을 얘기하는 것이니 나의 서드 에이지와 시점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개념과 삶의 패턴은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은퇴세대가 참고해도 좋을 듯싶다.

은퇴 후 하프타임을 가진 지 2년쯤 되니, 일과(日課)가 새롭게 짜여 간다. 일은 주 24시간 재택근무이니 내가 가장 원했던 형태다. 매일 1시간 20분씩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고, 40분씩 강아지와 산책한다. 취미로 하는 기타 연습에도 하루 1시간 정도 할애한다. 예전엔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 예배를 드렸는데, 요즘은 수면시간이 너무 짧아지는 것을 피하다 보니 새벽예배가 불규칙해졌다. 대신 하루 1시간가량 기도하거나 설교를 듣는다. 짬짬이 읽고 싶은 책을 보거나 원고를 쓴다. 그리고 가끔 모임이나 외부 약속에 나가고, 아내와 외출을 한다.

부산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한가하지도 않은 생활이다. 하지만 내 서드 에이지의 중심부는 아직 빈자리로 남아 있다. 무언가 가치 있는 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강하다. 훗날 “그때 그렇게 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 아닌 남을 위하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즌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늘 “뭘 해야 하지”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가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지에 적혀 있는 글귀라고 한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가 자신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용기가 없어 인생을 우물쭈물 낭비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교훈으로 남기려 한 말임이 분명하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존 그리니프 휘티어가 얘기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도 나를 재촉한다.

혀나 펜이 말하는
모든 슬픈 말들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이것이다.

“아, 그때 그렇게 해야 했는데!”

 최하늘

 새로운 시즌에 새 세상을 봅니다. 다툼과 분주함이 뽑힌 자리에 쉼과 평화가 스며듭니다. 소망이 싹터 옵니다. 내가 죽으니 내가 다시 삽니다. 나의 하프타임을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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