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의 그 곳-그 사람 2] 소설가 한강, 미술작가 양혜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유럽의 서쪽 끝나라, 포르투갈에서 한국 예술가의 이름과 문화 현장을 수차례 접하면서 반갑고 또 자랑스러웠다. 이국의 문화예술을 체험하기 위해 찾았던 서점, 음악당, 현대미술관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 연주회와 창작곡 CD 및 미술작품을 잇따라 마주하는 느낌은 각별했다.

늦가을 포르투갈 여행 기간 중 일정이 여유로워 주변의 사물로 향하는 촉각이 열려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직전 여행지 스페인에서 꽉 짜인 일정에 가우디, 피카소, 달리 등 큰 이름을 쫓느라 우연한 무엇을 발견하고 느낄 여유가 없다가 포르투갈에선 다소 느슨한 자유여행으로 시선도, 감동도 유연했었나 보다.

우리 예술가들의 글로벌한 활동을 절감할 수 있었던 곳은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였다. 한국서 직행 항공편이 없기도 하고, 다소 멀게 느껴졌던 포르투갈의 명소에서 한국 예술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관광 명소가 된 포르투의 렐루서점. 1층 안쪽에 ‘해리 포터’ 관련 별실이 있고, 2층 서가에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한강 작가의 두 소설이 꽂혀있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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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현장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의 하나로 꼽히는 포르투의 렐루서점. 중앙에 붉은 계단을 비롯해 아르누보 목조 장식의 인테리어에다 영국 작가 조엔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감을 얻은 공간으로 유명한 포르투의 관광 명소다.(책 구매가 목적이라기보다 기념 촬영을 위해 서점을 찾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서점이지만 5유로 내고 입장권을 사야 하며, 책을 사면 책값에서 입장료를 빼준다)

서점 2층에서 중절모에 둥근 안경의 얼굴 이미지가 인상적인 포르투갈 ‘국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포르투갈어 시집을 들추다가 한쪽 서가에서 아는 이름을 발견했다. ‘HAN KANG’, 소설가 한강의 소설 2권이 헤밍웨이, 헤세의 책 들 옆에 꽂혀있었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의 포르투갈어 번역서 ‘A VEGTARIANA’와 ‘ATOS HUMANOS’이었다.

‘채식주의자’가 영역돼 2016년 저명한 문학상인 영국 맨 부커상을 수상한 사실은 알았지만 포르투갈 서점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책을 만나다니… ‘채식주의자’는 포르투갈어 권인 브라질 상파울루주립대 한국어문학과 임윤정 교수가 2013년 연말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브라질에 선보였고, 동일한 언어를 쓰는 포르투갈의 서점에도 나왔다.(귀국 후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스페인어로도 번역됐고 최근 스페인 산클레멘테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는 뉴스도 접했다)

유명건축가 렘 쿨하스가 지은 ‘카사 다 무지카’ 외부 ⓒ신세미
‘카사 다 무지카’ 실내공연장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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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글로 접하는 문학 뿐아니라 현장서 직접 연주자를 대할 수 있는 음악당에서도 우리 음악인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포르투가 자랑하는 음악공연장 ‘카사 다 무지카’를 방문했을 때, 공연 안내 게시판에 붙어있던 ‘11월 17일 공연’ 포스터의 주인공이 반갑게도 한국 스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었다. 2017년 6월 세계적 명성의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한 그는 올해 공연 횟수가 100여회에 이른다니, 포르투 공연이 신기해할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포르투 독주회 소식이 뿌듯하고, 현지 체류 기간이 아니라 그 독주회를 직접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공연 장소 때문이기도 했다. ‘카사 다 무지카’, 포르투 공항서 도심 숙소로 차를 운전하며 시종 침묵하던 현지인 기사가 환하게 불 켜진 건물을 지나며 ‘카사 다 무지카’라고 단 한마디 했던 그 건물.

11월 17일 선우예권 독주회 포스터 ⓒ신세미
아트샵 유리장에 놓인 진은숙 작곡가의 작품 실황 녹음CD. ⓒ신세미

2005년 개관한 ‘카사 다 무지카’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쿨하스의 작품으로 세련된 건축미에 섬세한 음향 설비로 세계 음악가에 평판이 높다. 내부에는 소리가 다각도로 반사되는 목재 패널에, 공연 특성에 따라 천장 반사판이 이동하며, 벨벳 소재의 좌석은 앞 뒤로 움직였다. 완만한 구릉처럼 이어지는 외부 공터에선 젊은이, 어린이들이 보드, 싱싱카를 타는 등 현지인의 도심 휴게공간으로도 한몫하는 곳이었다.

‘카사 다 무지카’ 아트샵의 유리 진열대에는 서구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작곡가 진은숙 씨의 창작곡 연주 실황 녹음 CD가 놓여 있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진 씨는 그라베마이어상, 쇤베르크상, 시벨리우스음악상 등 유명 작곡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유명오케스트라가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포르투 세랄베스현대미술관의 정원에 설치된 양혜규 작품. 벽돌 소재의 5개 탑으로 이뤄졌다. 미술관 정원에는 이밖에 현대미술의 거장 아니쉬 카푸어, 우리나라 청계천 공공조형물 ‘스프링’의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도 전시 중이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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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상징적인 현대미술 공간인 세랄베스현대미술관에도 정원 한가운데 한국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카사 다 무지카’와 인접한 지역에 자리잡은 세랄베스현대미술관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건축으로, 잘 가꾸어진 대규모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기존 자연과 대지를 포용하며 간결 명료하게 시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알바로 시자는 국내 파주출판단지 내 미메시스아트뮤지엄의 건축가로 우리와도 친숙하다.

사전 정보 없이 미술관을 찾았다가 자칫 우리 작가의 작품을 스쳐 지나칠 뻔했다. 2층 카페에서 유리창 너머 정원의 설치작품을 내려다보면서 그 것이 양혜규 작품임을 알지 못했다. 미술관 실내에서도 잘 보이는 좋은 위치의 작품이라면 자국의 유명작가겠거니 여겼다. 무엇보다 그 동안 국내외에서 접한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소재부터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실내 기획전을 둘러본 뒤 기획전 이상으로 꼭 둘러볼만하고, 넓고 아름다워 ‘포르투의 에덴공원’으로 불린다는 미술관 정원으로 나갔다. 사실 실내 전시장에서 열리는 세 기획전(인도 출신의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 남성 누드와 동성애 등 도발적인 주제를 담아낸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및 어두운 방에서 이어지던 사진 영상의 포르투갈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의 강한 이미지를 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원 산책은 필요했다.

유리창 너머 야외까지 전시의 일부같은 세랄베스현대미술관은 아름다운 산책로와 분수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기획전으로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모형전,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전시중이다. ⓒ신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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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깔린 산책로를 걷다 보니 카페에서 보이던 벽돌 설치작품 ‘불투명 바람이 부는 육각 공원’이 나타났다. 무심코 읽었던 작품 안내판에 기록된 작가 이름이 ‘HAEGUE YANG’. 그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이며,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인전 외에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중앙 홀 및 바젤 아트 페어 언리미티드전에 출품하는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스타작가다.

블라인드, 빨래 걸이, 금속 방울, 볏짚 등 색다른 소재를 작업에 끌어 들였던 작가는 세랄베스미술관 정원에선 새롭게 3색 벽돌 소재의 탑 5개로 구성된 신작을 발표했다. 단아한 흰 건물이 나무 우거진 정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술관에서 정원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그 작품은 2016년 하반기 전시작으로 그 후 상설 전시 중이다.

외국서 우리의 문화 예술을 평가하고 주목하는 현장을 마주하며, 멀리 떠났던 이국 여행지에서 오히려 우리 문화의 위상과 격을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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