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며칠 전 한 학생이 뜬금없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는데 영화평을 쓰겠다는 것이다. 감동을 가득 담은 얼굴 표정이었다. 학생이 쓴 글 ‘외로운 예술가가 폭발시킨 음악의 힘’은 영화평이라기보다 ‘퀸(Queen)’과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찬사였다. 어쨌든 그 글은 모 신문에 실렸고, 다음 사이트에서는 인기 1위 글로까지 등극(?)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컷 Ⓒ네이버영화

해외 콘텐츠에 빠졌던 구세대와 한류 콘텐츠에 탐닉하는 신세대

‘보헤미안 랩소디’는 70년대부터 활동했던 영국 락 밴드 퀸(Queen)과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영화다. 퀸은 나이 60에 이른 우리 세대에게 당대의 시대적 아이콘이었다. 퀸 외에도 레드 제플린, 이글스,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등 하드 락 밴드들의 음악에 열광하며 우리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거칠게 긁어대는 전기 기타와 때려 부수는 듯한 드럼, 그리고 울부짖는 보컬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사운드는 시대에 불만이 가득했던 우리들에게 해방구 역할을 했다. 지금도 나는 ’Stairway to heaven’ ‘Hotel california’ ‘Dust in the wind’같은 음악을 들으며 아팠지만 역동적이었던 청춘시절로 빠져드는 즐거움을 누리곤 한다.

그런데 글을 쓴 학생과 같은 지금의 20대들이 왜 우리가 20대 시절에 빠졌던 음악에 공감하는가. 그들에게는 ‘서태지’가 있고 ‘방탄소년단’이 있지 않은가. 방탄소년단은 2017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초청을 받았고, 올해는 빌보드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뽑은 ‘올해를 빛낸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7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대중문화를 국내 콘텐츠보다 외국 콘텐츠에서 찾았다.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등이 있었지만 질량이 크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컸다. 억압적인 정치 상황이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 등장을 억제했다. 젊은이들은 검열을 받지 않는 외국 콘텐츠를 찾았다. 외국 콘텐츠 수입은 만성적으로 한국 콘텐츠 수출을 초과했다.

2002년, 한국 콘텐츠 수출이 외국 콘텐츠 수입을 초과했다

콘텐츠 수출입이 역전되기 시작한 때는 김대중 정권 말엽인 2002년경부터다. 정치 상황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대중문화 콘텐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수출입을 역전시킨 기폭제는 TV드라마 ‘겨울연가’였다. IMF로 제조업이 흔들리던 1997년경부터 소리소문 없이 ‘사랑이 뭐길래’‘별은 내 가슴에’ 등 TV드라마와 HOTㆍ클론 등의 음악, ‘쉬리’ ‘엽기적인 그녀’ 등의 영화가 대만ㆍ중국ㆍ홍콩 등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북경청년보>에서 ‘한류’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더니 이때부터는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연가’는 일본 공영방송 위성채널로 두 번, 지상파 채널로 한 번 도합 세 번이나 방송되었다. 방송 때마다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세 번째 위성채널로 방송될 때는 한국어 원어 그대로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구로 NHK는 일본어 음성 더빙을 하지 않고 일본어 번역 대사를 자막 처리했다. 주 시청층은 일본 중년 여성들이었다.

일본 중년 여성들은 왜 ‘겨울연가’에 열광했을까. 한 일본 평론가는 이 드라마가 그들에게 ‘잃어버린 소녀적 감수성’을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소위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에 속한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 경제 부흥에 동원되었던 세대다. 그들은 풋풋하고 순수한 감수성을 느끼거나 탐닉해볼 엄두도 못 내고 사춘기 소녀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겨울연가’를 시청하면서 그들은 ‘최지우’ 자리에 자신을 투사시켜 그토록 그리워했던 소녀적 감수성을 대리 체험했고, ‘욘사마’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이런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일본을 강타한 ‘겨울연가’ 열풍은 중국에서 ‘대장금’ 열풍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플랫폼이 ‘한류’ 콘텐츠 글로벌 시장 진출시켰다

2000년대 들면서 전 세계에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인터넷 망을 통해 한류 콘텐츠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K팝을 전 세계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강남스타일’이 퍼지면서 제작 프로세스도 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가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콘텐츠 기업이나 연예기획사가 현지에 진출하여 한류를 알리기 시작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1년 파리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루며 유럽에서 K팝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류라는 용어 대신 K팝, K드라마, K뷰티 등 ‘K’를 브랜드화해 한국제품의 수요로 연결시키는 마케팅 전략이 등장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는 치맥과 여배우들의 패션, 화장품을 인기 품목으로 만들었다. 한류 콘텐츠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남아에서만 통할 것이란 우려를 불식하고 이제는 중동과 남미, 유럽과 북미까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최근 한류는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2016년 사드 배치 갈등으로 한류 콘텐츠 주요 시장인 일본과 중국 내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중국은 ‘한한령’을 내리며 한국 콘텐츠의 중국 지상파 방송 진출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00년대 출생들이 지상파보다 모바일에 익숙한 트렌드를 보이고, 한류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웹툰, e스포츠로 확산하고 있어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반한류’ 트렌드 극복이 관건

먼 훗날 외국의 어떤 학생이 방탄소년단을 그린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겠다고 나설 때가 올까?

우선 잔존하고 있는 반한류 장벽부터 제거하자. ‘남북 분단과 북한의 국제적인 위협 관련 보도’, ‘지나치게 상업적인 콘텐츠 특성’ 등이 반한류 기류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정부는 한반도에서 북한 위협을 제거하고 남북 평화가 정착되도록 내치와 외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 개별 기획사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콘텐츠를, ‘보편적 가치를 담은 글로벌 콘텐츠’로 질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도 상업적인 반짝 이익보다 문화적 교류로 폭을 넓혀야 한다. 종합적으로 한반도와 한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국가별 맞춤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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