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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강물처럼

기사승인 2018.12.10  08: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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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곽진학] 세월은 가고 오지만 바람처럼 흩어져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쉽고 허탈하기만 하다.

차가운 바람이 대지를 휩쓸고 있는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 세월을 뒤돌아본다.

걸음마를 배우던 세 살의 나이에 광복을 맞았지만, 해방의 기쁨을 알리 만무했고 6.25 동족상잔의 참혹한 광경도 어렴풋이 기억되기는 해도 여덟 살의 미명(未明)의 나이라 피난민들과 섞여 살았으면서도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4.19와 5.16을 거쳐 10.26의 변란과 군사문화의 종식에 이르는 험난한 과정, 감히 상상도 못했던 촛불혁명 등 거칠고 험한 바다에 휩쓸려 정말 격동의 두 세기를 건넜다.

급속한 변화와 난해하고 복잡한 시대적 도전 앞에 일찍이 우리들을 산산이 깨뜨려 절망과 고통을 경험케 하고 사위어 가는 역사 앞에 찬란한 새벽을 꿈꾸게 하신 섭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픽사베이

역사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명제이다.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아픔의 시대이기도 했다.

황무지의 저자 T.S 엘리엣은 인간의 기술혁명이 만들어 낸 가공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들이 난사된 제1차 세계대전을 목격하고 3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문명을 경험하면서 그에게 세상은 더 이상 생명이 싹틀 수 있는 평원이 아니라 황무지 그 자체였음을 탄식하고 있다. 지성과 도덕의 사회라고 자부하던 유럽의 아우슈비츠도 피해를 당한 유대인이나 그 야만의 문화를 침묵으로 지켜보았던 비유대인에게도 똑 같은 죽음의 문화였다.

인간이란 존재가 역사와 현실 앞에, 더욱이 이성을 잃은 집단 앞에서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야만과 폭력의 힘은 역사의 필연성과 신의 섭리 앞에선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다.

척박한 이 땅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난과 질병과 무지의 동토(凍土)에 자유와 민주와 인권이 어둠에 꽁꽁 묵인 채 엄혹한 세월을 수없이 보냈다. 시장경제와 도덕성, 법치주의를 입으로는 외치면서도 자기헌신은 외면하고 변화보다는 과거의 인습과 안일에 젖어 극단적인 반공. 반북 .친미주의, 그리고 성장만능에 매몰돼 계층과 지역, 세대와 이념으로 사회를 조각조각 나누고 이간질했다.

그래도 세상은 역사의 여명(黎明)이 다가와 오늘 이 땅의 지도자가 지구촌의 이곳저곳을 찾아 평화의 사도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 황홀하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역사의 전환기를 맞은 오늘, 우리는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 내어야 할 모두의 과제이며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 또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특권과 반칙을 없애고 이웃의 아픔,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고, 염결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또한 한시라도 미룰 수 없는 절실한 명제이다. 화해와 평화와 치유의 강물이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여울져 흐르기를 바라는 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염원이겠는가?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라고 한다.

‘꽃이나 나무보다 흙을 더 중요시하고 천재보다 민중을 더 소중히 여기는’ 세상, 우리 모두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회의가 믿음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설움이 기쁨으로 다가오는 날, 우리는 생명과 생명,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새 하늘 새 땅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곽진학 전 서울신문 전무 jinhakkwak@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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