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청년칼럼=김연수] 몇 해 전부터 치료법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것만 같다. 요즘 나를 괴롭게 하는 이것을 사람들은 흔히 ‘결정 장애’, ‘선택 장애’라고 부르곤 한다. 결정 장애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 일정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그 정도가 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이것을 앓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경과가 좋아지거나 회복되는 사례를 보기 힘들다. 물론 이걸 꼭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결정 장애가 생각보다 우리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선택을 할 때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불편함을 안겨준다. 카페에서 마실 음료를 쉽게 결정하지 못해 뒷사람이 기다릴까 봐 주문 순서를 양보하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 메뉴선정에 고민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하기 일쑤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폐가 되기도 한다. 

Ⓒ픽사베이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결정 장애를 앓게 되었을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장이 강한 편이었다. 기호가 확실하고 매사에 당당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이렇게 변했는지 원인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일상 속에서 내가 가장 깊게 고민하는 것들, 그리고 친구들이 내게 대신 선택해주길 바라는 것들에 대해 나열해봤다.

1. 오늘 뭐 먹지?
2. 내일 뭐 입지?
3. 밤에 씻을까, 아침에 씻을까?
4. 프로필 사진 뭐 할까?
5. SNS에 어떤 사진 올릴까?

모두 다 사소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선택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 아주 큰 문제가 되진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네 탓’이라는 말이 있듯 선택의 결과가 나쁠 때 타인에게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사소한 일이라도 정말 내 탓을 하게 되고 선택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수록 또 다른 선택의 순간과 마주할 때 믿음과 확신이 없어진다. 한편으로는 직접 선택하는 것에서 벗어나 후회의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버리는 일종의 회피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선택과 직면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이 선택에 따른 결과도 혼자 감내해야 한다. 선택, 결정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그것을 정하는 게 더욱 어렵다. 그래도 그런 나날에 조금씩 더 익숙해지고 나 자신을 믿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간단한 메뉴 선정이 아니라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미래가 걸린 선택과 마주했을 때까지 타인에게 어떤 선택이 좋을지 물어볼 수는 없다. 이제는 한 뼘 더 성장한 나와 마주하기 위해 ‘결정 장애’에서 벗어나 ‘결정연습’을 해보려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어떤 결과가 나를 찾아오든 기꺼이 맞이할 준비를 함께 하면서 말이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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