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쏙 빼닮은 솔잎란!

솔잎란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silotum nudum (L.) P.Beauv.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늘 푸른 가는 줄기가 한겨울에도 청정한 솔잎을 닮은 솔잎란. 겨울이 깊어져 갈수록 녹색이 돋보인다.@사진 김인철
늘 푸른 가는 줄기가 한겨울에도 청정한 솔잎을 닮은 솔잎란. 겨울이 깊어져 갈수록 녹색이 돋보인다.@사진 김인철

일전 요란하게 첫눈이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러다 언제 추웠느냐는 듯 기온이 치솟는 날도 있겠지만, 불가역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갈수록 초록빛은 사라지고 사위가 잿빛으로 물들어 갈 즈음 남산 위의 소나무처럼 홀로 청정한 풀이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져 갈수록 푸름이 빛을 더하는 풀이 있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쏙 빼닮은 풀이 있습니다. ‘소나무 이파리’의 줄임말을 이름의 앞머리에 사용한 솔잎란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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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름만 흉내 낸 것이 아닙니다. 처음 보는 순간 누구라도 ‘아하!’ 하며 감탄사를 토할 만큼 전초가 솔잎을 닮았습니다. 다만 녹색의 가닥은 솔잎과 달리 잎이 아니라 줄기인데, 밑동에서 위로 올라오면서 Y자로 반복해서 갈라지며 풍성해진 모습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솔잎을 얼기설기 다발로 묶은 것처럼 보입니다.

포자로 무성 번식을 하는 양치식물인 솔잎란. 녹색의 가는 줄기에 깨알만한 포자낭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사진 김인철
포자로 무성 번식을 하는 양치식물인 솔잎란. 녹색의 가는 줄기에 깨알만한 포자낭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사진 김인철

그런데 이름과 전혀 다른 특성도 가졌습니다. 난초 ‘란(蘭)’이 명칭에 쓰였지만, 솔잎란은 보춘화나 병아리난초 등 우리가 잘 아는 난초과 식물처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종자로 번식하는 종자식물이 아닙니다. 꽃도 종자도 없이, 포자(胞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이지요.

실제로 키 10~45cm로 자라는 솔잎란을 가만 살펴보면 한겨울에도 늘 푸른 녹색의 가는 줄기에 지름 1~2mm의 둥근 알갱이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닥다닥 달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포자를 품고 있는 포자낭입니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점차 노랗게 변하는데, 무르익으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많은 포자를 세상으로 내보내 종족 번식을 꾀하게 됩니다.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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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란은 포자로 번식한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 양치(羊齒)식물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양의 치아’처럼 가지런한 잎도, 진정한 뿌리도 없어 ‘솔잎란과, 솔잎란속’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독립적인 식물로 분류됩니다.

흔히 양치식물은 무성 생식을 하는 하등의 생태 때문에 원시적인 식물로, 생존의 역사가 오래된 화석식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솔잎란 역시 지금으로부터 대략 3억 5,000만 년 전부터 4억 5,000만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실루리아기 사이에 번성했던 식물로 분류됩니다. 한마디로 천고의 역사를 지닌 식물이란 말인데, 전남 화순의 솔잎란 자생지의 경우 멀지 않은 곳에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있는 게 우연이 아닌 듯 흥미롭습니다.

바위 틈새에 자리를 잡은 솔잎란. 하늘이 처음 열린 까마득한 옛날부터 천고의 세월 동안, 이 땅을 굽어보았으리라.@사진 김인철
바위 틈새에 자리를 잡은 솔잎란. 하늘이 처음 열린 까마득한 옛날부터 천고의 세월 동안, 이 땅을 굽어보았으리라.@사진 김인철

거의 모든 꽃이 고개를 떨구는 한겨울 더욱더 초록의 빛을 발하는 솔잎란.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는 북반구와 남반구의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잡초처럼 널리 흔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열대지역에서는 나무에 붙어서 사는 착생식물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온대지역에서는 바위틈에 자라는 게 보통이라는 것. 제주도와 남해안 등 열 군데 안팎의 우리나라 자생지가 결국 솔잎란의 북방한계선이 되는 셈인데, 환경부는 1989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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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 철
김 인 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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